여기, 문화기획자이자 생산자로 자라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를 만들어 함께 성장하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그들입니다. '2014 희망날개' 프로젝트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나답게’ ‘우리 함께’ 자라나고 있는 그들의 활동과 성장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리는 같이하면 하나입니다”

다문화여성커뮤니티 지원프로젝트 <희망날개> 윙크페스티


지난 10월 26일, 다문화여성커뮤니티 지원프로젝트 <희망날개>에서 선보이는 윙크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나루아트센터를 찾았다. <희망날개>프로젝트는 다문화여성이 문화생산자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과 한국여성재단이 함께 다문화여성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공연장 건물 전면을 덮은 대형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하얀 바탕에 다채로운 빛깔의 선들이 그물처럼 교차하고 있어 마치 아름다운 조각보를 보는 듯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각각의 선은 수많은 그림들로 이어져 있다. 하나하나의 그림은 꽃을 그린 것인데,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다른 모양과 색깔의 그림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독특한 무늬가 되었다.


이번 페스티벌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와 상영을 하는 섹션과 다문화여성들의 음식과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섹션, 그리고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 섹션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당당한 얼굴의 그녀들이 밝게 인사한다.




“우리의 이야기,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요”

전시 및 상영, 참여프로그램




공연장 입구와 연결되어 있는 2, 3층 로비에는 개별 커뮤니티가 전시 및 체험 부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2층에 들어서는데 한편에서 연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도 스팸문자를 보고 남편을 바람핀다고 오해한 적이 있어요. 

다들 같은 일로 부부싸움을 하네요.” 

언어가 달라 생긴 오해를 소재로 한 ‘스팸’이라는 제목의 짧은 영화를 함께 보고 있던 부스였다. 


<미디어자조모임>에서는 지난 1년 간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은 단편영화,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등을 만들었다. 영상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다문화가족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 좋았고,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고. 

“언어나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오해가 많아요. 우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고 싶어요.” 

이지니 감독 (필리핀)은 자녀들이 겪는 왕따 문제, 언어로 인해 생겼던 오해와 갈등을 담담하게 혹은 유쾌하게 담아 보고 싶다고 했다.




텃밭을 가꾸며 지역 내 다문화 감수성을 키워나가고 있는 <이주여성자조모임 수다모임>은 벽면을 가득 채운 글과 사진으로 자신들의 지난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공부모임 <좌충우돌길찾기>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다문화여성 활동가들이 바쁜 일상 틈틈이 자신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비영리활동가로 살면서 업무에 지쳐있는 마음을 쉴 수 있는 예술치료와 단단한 마음을 만드는 인문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 커뮤니티 소개를 듣고 지나가려는데, 활동가 보얀뗄게르 씨 (몽골)가 붙잡는다. 이주여성인권을 위한 서명을 하고 가란다. 윙크페스티벌 역시 자신들 활동의 연장으로 보는 적극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늘은 정말 잔칫날 같아요.

다문화여성들의 요리와 문화


3층 로비는 더욱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 사이로 빠른 비트의 아프리카음악이 흐르고 이국적인 향기가 새어나왔다. 이곳에서는 다문화여성들의 요리를 직접 먹어보고, 그들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그들의 옷과 헤어스타일을 따라해 볼 수 있었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커뮤니티가 고향의 음식을 테이블 가득 차려놓았다. 테이블 앞으로 색다른 음식을 맛보려는 참가자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그 줄을 따라가 보니 화려한 무늬의 옷과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난민 여성들의 커뮤니티 <맘쉐프>의 부스. <맘쉐프>는 아프리카의 음식을 선보이는 한편, 그 옆에 작게 ‘Salon’을 열어 아프리카여성들처럼 머리카락을 땋아주는 체험 부스를 진행했다. 밋밋했던 청년의 헤어스타일이 순식간에 아프리카 풍으로 변신했다. 머리를 땋고 아프리카 요리를 먹으며 신나는 음악을 들으니 절로 흥이 돋는다.


커뮤니티 <말하는 도시락>은 ‘요리로 문화를 소통하자’라는 모토를 가지고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활동을 해왔는데 그간 선보였던 음식들을 이번 페스티벌 참가자들과도 나누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레샤 씨 (스리랑카)는 참가자들이 음식을 덜 때마다 눈을 맞추며 음식의 맛을 설명하고 재료를 알려준다. 음식 하나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 만두와 꼭 닮은 ‘주차이허즈’는 고기와 새우, 부추로 속을 만들어 한국사람 입맛에도 딱이다. “오늘 아침에는 정말 긴장했어요. 하지만 그릇이 비어져 가니까 정말 기뻐요. 사람들이 음식을 좋아하는 게 신기해요” 요리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했을 텐데 이레샤 씨는 여전히 기운이 넘친다.




“우리 엄마 최고에요”

노래와 연주, 그리고 춤


두 시간여에 걸쳐 전시와 체험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마무리 될 즈음 공연장 문이 열렸다. 드디어 지난 수개월간 갈고 닦았던 그녀들의 무대를 확인할 시간이다. 이번 윙크페스티벌에서는 총 11개의 팀이 무대에 올랐다.


각국의 전통 춤과 전통 악기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귀한 무대들이 이어졌다. 베트남의 아름다운 풍경사진과 베트남 음악을 배경으로 전통춤을 선보인 <반마이베트남공연팀>, 베트남 전통 모자를 이용한 춤은 마치 한국의 부채춤을 보는 것 같다. 아시아 각국의 악기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낸 <팽려영의 아시아 음악여행>, 몽골의 전통춤과 악기를 선보인 <주한몽골여성회 까마를>, 필리핀의 전통 대나무춤과 댄스를 믹스해 열정의 무대를 선보인 <펄오브오리엔트>. 관객석에 있던 한 아이가 “우리 엄마에요!”라고 무대 위를 가리키며 연신 환호를 보낸다.



다양한 국적의 다문화여성들로 구성된 커뮤니티들은 언어를 뛰어넘어 서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밴드나 난타, 판토마임 등의 공연을 준비했다. 무주에서 올라온 <다문화밴드 레인보우>, 깜찍한 개량한복을 입고 드럼과 베이스, 전자기타를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그녀들은 카리스마가 넘친다. ‘달타령’으로 흥을 돋우다가, 두 번째 곡 ‘여행을 떠나요’에서는 관객을 좌지우지하는 무대매너를 보여주었다. 문화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몸으로 표현하여 마음 치유하는 과정을 판토마임으로 선보인 <한마음회>,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몰입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올해 신규 지원을 받은 <아름다운연대>는 자신들이 직접 개사해서 부른 노래에 맞춰 준비한 수화공연이 인상적이다. 




<다울림><커뮤니티파이팅 대한민국파이팅!>, <두드림아모레>는 난타공연을 준비했는데 의상이나 구성에서 볼 때 비슷하면서도 모두가 다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다문화합창단 행복메아리>팀이 부른 넬라판타지아는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었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자 사회자는 공연 팀 전체를 무대 위로 호명했다. 각자의 커뮤니티는 하나가 되어 관객들의 환호에 답했고 관객석에 있던 가족들은 무대 위 엄마를 자랑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축제는 그렇게 서로를 얼싸안고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 되었다. 그녀들은 무대 위에서 지난 일 년의 시간을 우리에게 전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그녀들 모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빛이 났다. 문화생산자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확인했던 2시간이었다.



이번 윙크페스티벌에는 다문화가족의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축제를 함께 기획한 성공회대문화대학원의 김성진 씨는 이런 생생한 이야기가 더욱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문화여성을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로 기억했으면 한다고. 그래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게 될 거라고.


한국여성재단 담당자에게 현수막의 무늬에 대해 물었다. 

“씨실과 날실을 표현한 거예요. 다문화여성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이어서 만들었어요. 서로의 마음과 실천을 한 줄 한 줄 엮어서 보다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 내자는 의미에요. 그럼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겠죠?”(웃음)




홍세미      기록하는 사람. 여자와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다. 

              할머니들과의 수다와 낯선 골목을 좋아한다.

 


Posted by 한국여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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