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문화기획자이자 생산자로 자라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를 만들어 함께 성장하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그들입니다. '2014 희망날개' 프로젝트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나답게’ ‘우리 함께’ 자라나고 있는 그들의 활동과 성장 이야기를 전합니다.

 


 내 마음 속 이야기 영상에 펼친다

안산미디어자조모임

문화다양성을 위한 다문화여성 문화커뮤니티 지원희망날개'



경기도 안산시 안산다문화가족지원센터 1층 동아리실. 올해로 세 번째 희망날개의 지원을 받는 영상제작커뮤니티 안산미디어자조모임은 회원들의 커다란 웃음과 목소리로 왁자지껄하다. 10월에 있을 윙크페스티벌 상영을 목표로 제작 중인 10분짜리 영화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힌 상태지만 걱정은 없다.

2009년 결혼이주여성 13명이 함께 시작하여 지금은 필리핀 출신 여덟 회원이 시나리오 작업부터 촬영,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동안,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해보고, 또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 결국 해낼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scene #1  활달하고 적극적인 우리에겐 영상작업이 딱이에요


“영상물을 제작하려면 서로 배우가 되어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해요.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 어울린다는 데 저희가 딱 그렇거든요.” 

결혼 이주 14년째로 올해 리더를 맡고 있는 지니 씨의 설명이다.

회원 중 일곱이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기타도 배우고 복지관이나 노인회관 행사 때 민속춤 공연도 한다.

“공연을 위해서는 정해진 음악에 맞춰 정해진 동작을 계속해서 연습해요. 그런데 영상은 좀 달라요. 서로 다른 생각이 많이 나와요. 생각을 모아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요. 하다가도 계획한 것과 다르면 다시 해요. 그래도 안 되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요.” 

그래서 영상은 패션(passion), 열정이 많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 ‘영상제작’은 어려운 작업처럼 보여요.

- 지니 : 처음엔 저도 아이들 외할머니께 보여드리려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부터 했어요. 모임을 시작하고는 영상 공부에 푹 빠졌어요. ‘밥’하는 것도 찍고 장난하는 아이들도 찍고. 어떨 땐 놀러 가는 건지 사진을 찍으러 가는 건지. 중독 같아요.(웃음) 작년엔 같은 회원인 아나벨레 씨에게 리마인드웨딩 동영상을 만들어 선물했어요.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scene #2  의미있는 주제도 다뤄보고 싶어요


그동안 안산미디어자조모임에서는 ‘나의 첫 김치’ ‘내가 한국에서 사는 이유’ 등 단편영화를 여성영화제에 출품했다. 작년엔 가족 이야기를 춤과 노래로 만들어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올해는 이주여성의 자녀들이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뜻을 모으고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영화를 제작중인 김은석 감독은 안산미디어자조모임의 촬영과 편집 실력이 무척 훌륭하다며 “따돌림에 관해 엄마가 묻고 아이가 답하는 장면은 이주민남성들과의 작업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놀라워한다.


>> 여름내 찍은 자녀들과의 인터뷰영상은 어땠어요?

- 김은석 : 보는 내내 뭉클하기도 하고 마음 아팠어요. 따돌림이나 놀림의 문제는 이주민 자녀뿐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이잖아요. 촬영한 그대로를 보여준다면 그 진정성으로 인해 정말 울림이 클 거예요. 하지만 공개후의 신상문제 등을 고려, 현실적으로 적절한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scene #3  가슴 먹먹한 아이들 이야기


처음 인터뷰촬영에 흔쾌히 동의했던 아이들도 막상 시작되자 답답하고 억울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이 격해졌고 엄마회원들은 마음의 동요를 숨겨야 했다. 결혼이주 14년째로 현재 다문화센터에서 통번역 담당자로 일하는 지원 씨가 그날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 가족은 성당엘 다니는데 올 초 신부님이 저를 불러서는 큰 애가 화를 잘 참지 못하는지 물으시는 거예요. 성당 공부방에서 어떤 애를 때렸다면서요. 정말 많이 놀랐어요. 왜 때렸는지 물어도 대답 안했어요, 그때는.”

지원 씨는 이번 촬영을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날 한국남자아이 하나가 다문화여자아이에게 “야! 너네 엄마, 아프리카냐? 너 곱슬머리에, 얼굴은 왜 새카매?” 라고 놀렸단다. 여자아이는 놀라서 눈물만 뚝뚝 흘릴 뿐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지원 씨 아이는 “여자아이 엄마도 필리핀 사람이고 내 엄마도 필리핀 사람이고 그건 내 엄마를 욕하는 거니까” 못 참았다며 죄송해했다. 촬영하는 내내 지니 씨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 촬영이 끝나고 나서 아이는 뭐라던가요?

- 지원 : ‘엄마, 오늘 시원했어.’라고 했어요. 마음속에 있었던 게 많았나 봐요. ‘시.원.했.어.’ 그 말이 며칠이고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예요. 남편은 그 날 아이에게 ‘괜찮아. 잘했어. 그렇게 해야지’라고 했지만 저는 아니에요. 그래도 참으라고 했어요.




scene #4  영상도 공연처럼 무대에 올리면 어때요?


9월 25일엔 잠시 서울 나들이. 아침 일찍 지니 씨를 비롯한 일곱명은 지하철을 타고 두 시간 걸려 홍대 거리에 도착했다. 그날 시작하는 또다른 이주민문화예술제에 걸린 자신들의 조각보 타일벽화를 보기 위해서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참 열심인 우리죠? 하하하“



오후엔 한국여성재단 세미나실 문화기획자과정 하반기 워크숍. 10월 26일에 있을 여성이주민의 축제 윙크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마지막 자리.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하며 페스티벌 공연시간 조율하랴 체험부스 운영상황 점검하랴 다들 분주했다. 경연이 아닌 참여에 방점을 두고 콘서트와 문화해설도 곁들일 예정이란다. 안산다문화가족지원센터 자조모임담당자 류수자씨와 지니 씨는 “작년엔 부스에서 상영했지만 올해는 무대에 올려 다 같이 보면 더 감동적이겠다”며 눈을 반짝인다.


>> 매번 느끼지만 문화기획자 과정에 참석한 사람들은 목소리가 활기차고 정말로 적극적이에요. 리더들이라 그런가 봐요.

- 류수자 : 개개인이 활동적일 수 있지만 어디에서나 그렇지는 않겠지요. 특별히 활기차고 자기표현에 적극적인 건, 이곳에 대한 신뢰 때문 아닐까요?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 저희 센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 신뢰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죠.




scene #5  역할에 어울리는 인형연기자가 필요해요


그날 저녁 재단에서 준비한 맛난 식사를 안타깝게 뒤로 한 채 다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인형공연 협동조합. 여기서 지니 씨와 류수자씨와 김 감독은 인터뷰 영상을 대신할 ‘인형연기자’를 찾기로 했다.


앞서 회원들의 영어강사 경험을 살려 손가락인형과 종이컵인형으로 촬영해 보고는 커다란 스크린에는 큰 인형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었는데 딱 맞는 인형연기자는 쉬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체제작하기로 했다. 전체적으로 큼지막하게, 팔다리 관절부분은 분리하여, 각각의 얼굴은 배역에 맞춰 엄마가 만들기로 한다. 그래야 감정이 얹힐 거라면서.


>> 봉제인형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액팅’도 배워야 한다면서요?

- 지니 : 인형 팔다리에 줄을 연결해서 움직이게 하는 거예요. 녹음된 아이들 목소리에, 머리를 긁는다거나 머뭇거리고 답답한 마음에 엉덩이를 들썩이던 모습을 영상에 옮기려면 인형도 연기를 해야 한대요. 새로운 도전이에요.




scene #6   마음 속 이야기를 보여주는 건 멋진 일이에요


10월 첫 주 연휴 안산미디어자조모임에선 재봉틀 여러 대가 몹시 바쁘게 돌아갔다. 주인공인형 몸체도 실팍하게 만들고 팔다리도 이어 붙였다. 눈코입도 정성껏 완성했다. 아직도 인형연기에 촬영, 편집하는 일이 빠듯하다.

영상이 다 완성되면 어떤 기분일까? 지니 씨는 환하게 웃는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계속 생겨서 힘들지만, 신나요. 밥 먹다가도 생각하고 길 가다가도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얼른 보여주고 싶고 윙크페스티벌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요. 마음 속 이야기를 영상으로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잖아요. 정말 기대돼요.”


시작할 때의 낯섦을 묵묵히 헤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활동이, 삶이, 이미 한편의 영화처럼 감동적이다.





 

조미환  줌마네 글쓰는 이로 인터뷰모임집 <뜨거운 만남>에 필진으로 참여, 글쓰기 수련중이다

 



Posted by 한국여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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