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토대로

열심히 실천하는 여성활동가가 되겠습니다!

 

 

[미래여성NGO리더십 장학과정] 8기 수료식 및 연구보고회 

 

 

지난 2월 5일(목) 유한킴벌리 후원으로 진행하는 제8기 미래여성NGO리더십과정(성공회대 실천여성학 석사과정) 수료식 및 연구보고회가 개최되었다. 1년 동안 치열하게 운동하고 공부한 장학생들은 그 동안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남은 1년을 더 의미있고 멋지게 보내게 위한 계획들을 함께 나누며 수료식과 연구보고회를 진행하였다.

 

 

이제는 성숙과 도약의 단계입니다

수료식과 연구보고회에 앞서 활동가들에게 소중한 학습의 공간과 장을 마련해준 성공회대학교 이정구 총장,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여성리더를 키우는 사회적가치의 모범을 보이는 유한킴벌리 송천헌 부사장, 여성활동가들의 역량강화에 대한 욕구와 여성리더십 향상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는 한국여성재단 이혜경 이사장, 한국여성단체연합 정문자 공동대표의 축사가 이어졌다. 특히, 유한킴벌리 송천헌 부사장은 “한국여성NGO리더로서 열심히 학습하고 배움의 길을 함께하신 분들이 전국에 100여명이 되고 있다. 이미 여러 활동가분들은 전국 각지, 각계각층에서 여러 주요한 활동들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젠 성숙의 단계로 들어서 여러분들이 본 과정을 통해 학습한 내용들을 토대로 한국사회에서 어떤 네트워크를 형성해나갈것인지, 지식과 경험들을 어떤식으로 사회내에서 펼쳐나갈지에 대해서 고민하여 한국사회를 더 균형있고 더 밝은 사회로 발전하는데 여러분이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라고 장학사업에 대한 깊은 애정과 믿음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삶의 한 부분에서 여성학을 만났던 시기들이 큰 기쁨이었다


지난 7기 김수정 장학생은 졸업을 앞두고 감사의 마음과 앞으로의 활동 포부를 밝혔다. 

“2년간의 여성학수업을 끝내고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1학기를 시작하면서 처음 배웠던  <페미니즘 사상의 흐름>을 졸업할 때가 되어 다시 기억하고 이해하게 되었는데 벌써 졸업이라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 배운 것을 어떻게 현장에서 적용할 것인지가 숙제로 남아있지만 삶의 한 부분에서 여성학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제는 배움의 단계를 넘어서 성숙과 도약의 단계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어떤 모습으로 사회에서 실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앞으로 더 기대되는 활동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공부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를 하면서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그 선택을 기업-대학-NGO 협력으로 만들어진 성공회대 실천여성학과정은 활동가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개인 Empowerment를 통해 조직의 성장, 더 나아가 한국 여성운동의 실천적 담론을 재생산해내고 시민사회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활동가들을 위한, 활동가에 대한, 활동가들을 위한 유일한 실천여성학 석사과정 2년 중 이제 반을 끝낸 8기 장학생들도 1년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 성장할 본인의 모습에, 그리고 여성운동의 지형을 바꿀 영향력을 가진 여성리더로 성장할 기대를 드러냈다.

 

“공부를 하면서 고민이 깊어지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기쁨도 깊어져갔다. 후배님들 보면서 고민과 기쁨을 능동적으로 선택하심에 박수를 드리고자 하며, 나 또한 올 한해 더 많이 고민하고 기쁨을 느끼며 공부할 것이고 더 멋진 활동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성활동가로 일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해 너무 무지했었다. 지난 1년을 보내며 더 많은 배움이 필요함을 느꼈다. 앞으로의 1년, 후회 없이 알찬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할 것이며 앞으로의 1년이 더 기대된다. "

 

“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유한킴벌리, 성공회대학교, 한국여성재단, 한국여성단체연합 모두의 지원과 도움으로 나의 성장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감사한 마음을 함께 나누며 실천하는 활동가가 되겠다”

 

“1년 동안 실천여성학 과정은 나에게 배움이고 힐링이었다. 학문적 배움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가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돕고 이끌어주며 함께 1년을 보냈다. 이러한 배움과 지식을 현장에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나누고 느끼며 살아가겠다.”

 

 

                                            

 

여성운동현장 들여다보기!

8기 장학생들이 1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했던 주제들을 연구보고회를 통해 나누며 이 시대 새로운 여성운동현장의 모습, 여성활동가들이 현재 고민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함께 확인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방향성들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구보고회 발표>

‣ 최유라 여성운동리더십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한국여성의전화 지부 대표의 경험을 중심으로)

‣ 정순옥 인간 재생산 - 여성의 몸을 둘러싼 출산정책, 모성

‣ 박사옥 성별분업에 기초한 공․사 구분과 여성노동


[첨부파일]

 

2014년 제8기 미래여성NGO리더십과정 연구보고회 자료집.pdf


미래여성NGO리더십과정이란? (사)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기획하여 2007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유한킴벌리와 한국여성재단의 ‘NGO여성장학사업’으로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정(4학기 석사과정) 장학생에게 ‘미래여성NGO리더십’ 장학금을 제공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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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여성NGO리더십과정, 8년 동안의 성과 모아내



유한킴벌리가 후원하고 성공회대가 진행하는 <미래여성NGO리더십과정>8년차를 맞아 그 성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1229일 여성재단 1충 박영숙홀 내 교육장에서는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정봉수 유한킴벌리 부장, 허성우 성공회대 교수, 김금옥, 정문자 한국여성재단 공동대표, 8년 동안의 성과를 연구한 안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연구결과를 함께 나누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해 실천여성학과정에 참여한 수료생들을 직접 인터뷰한 안인숙 연구위원은사람의 성장을 글로 전달하는 것이 한계가 있지만 78명의 수료생들과 나눈 성장의 이야기는 분명 의미있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김금옥 한국여성단연합 공동대표는 기업(유한킴벌리)과 대학(성공회대학교), 여성단체(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재단)가 함께 만들어낸 교육과정, 그리고 대학의 정규석사과정으로 이어진 것은 시민사회영역을 한층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사람의 성장, 변화의 물결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무엇보다 현장활동가로서 활동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천여성학>은 많은 과정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여성주의와 리더십을 겸비한 많은 학생들은 현장에서, 정치계에서 또 다른 풀뿌리단체에서 영향력을 끼쳤고 1년 과정이었던 NGO학과가 정규 석사과정 <실천여성학과정>으로 변화 정착할 수 있는 원동력도 되었다




참석자들은 연구결과를 통해 지금 <실천여성학과정>이 왜 절실한가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지금 막 단체에 입문한 20대의 활동가, 풀뿌리활동가들에게 여성주의가 절실히 요구되고 위축된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에게 친근히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여성학 교재, 온라인방송 등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천여성학과정>은 여성학이 현장과 접목해서 빚어낸 다양한 연구업적물과 논문, 출판물들로 여성학발전에 기여했고 현장활동가들이 서로 고민을 나누고 성장을 돕는 네크워크를 형성해왔다. 8년이 성과를 잘 담아 앞으로도 한국사회 여성활동가와 시민운동발전을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본다.           

 

 

 

유한킴벌리와 한국여성재단의 미래여성NGO리더십과정은 (사)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기획하여 2007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4학기 석사과정)에 참여하는 여성활동가에게 미래여성NGO리더십 장학금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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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8년째를 맞이한 공익단체 여성활동가들의 역량강화 프로그램 <이화-유한킴벌리NGO여성활동가리더십교육과정>의 2014년도 4기 수료식이 지난 11월 4일(화), 이화리더십개발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수료식에는 총 6주간의 교육을 마친 장학생 30명과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 유한킴벌리 김혜숙 상무, 김진희 부장, 박기남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 장필화 이화리더십개발원 원장이 참석해 이들을 축하했다.

 

 

장필화 이화리더십개발원 원장

“본 과정을 통해 지역이라는 작은 단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와 세계를 변화,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써 여러분의 힘, 여성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확장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길 희망한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본인의 역량을 더 펼치고 활약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박기남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

“본 교육과정을 통해 여성활동가로써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길 바라며, 여성활동가로서의 책임의식을 갖고 각자의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해주길 바란다”

 

 

김혜숙 유한킴벌리 상무 

“유한킴벌리에서는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여성들의 리더십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여러분의 가능성에 대해 항상 응원한다"

 

 

 

 

안은경 한국소비자연맹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커뮤니티 안에서 성장하고, 실천과 성찰을 통하여 더불어 교육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교육받고 성장하여 멋진 여성리더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NGO여성활동가리더십교육과정여성활동가들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차세대 여성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과정입니다.

 

NGO여성활동가리더십교육과정은 2015년에도 진행될 예정이며 한국여성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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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씨(가명. 42세)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단체를 먼저 소개하고 싶어 했다. 그곳은 탈성매매 여성을 위해 상담, 법률지원, 의료 지원, 자활 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진희 씨는 거기서 탈성매매 여성들에게 퀼트 만들기와 재봉틀 바느질을 전담하여 가르치며 그녀들의 자립을 돕고 있었다.

 

‘공방’이라는 팻말이 걸린 방, 한쪽 벽에는 갖가지 색깔 고운 실패들이 촘촘히 걸려 있고, 다양한 질감의 천들이 쌓여 있었다. 나란히 놓인 재봉틀 앞에 앉아 무언가 만들고 있는 수강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함께 모여 바느질을 하는 모습은 누가 뭐래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풍경이 틀림없었다.

누구나 원한다면 만들어 낼 수 있는 풍경, 그러나 아마도 이 여성들은 오랫동안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풍경이 아니었을까.

 

김진희 씨는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좋아해서, 학교를 체육특기생으로 다녔다.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돈이 많이 드는’ 일이어서 중간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그녀의 학교 시절은 배움도, 친구도, 추억도 없는 무미건조한 것이 되고 말았다.

 

행복은 여러 가지 모습이지만, 불행은 한 가지 모습을 갖고 있다고 했던가. 그녀의 가정 역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것이 그녀를 성매매 생활로 밀어 넣은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무턱대고 시작한 생활이었다. 아무도 그 일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청소년기였다. 세상은 몰랐지만,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만은 알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녀는 15년가량 그 생활을 계속했다. 여러 종류의 업종을 전전했다. 새로운 업종으로 옮길 때마다 빚이 늘어갔다.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하면 ‘벌금’을 물어야 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불’을 쓰고 있었다. 그 밖에 온갖 불합리한 업계의 규정들을 불합리한 줄도 모르고 지켜야 했다. 고통을 참아가며 일을 계속 했지만, 돈은 벌지 못했고, 몸은 망가졌고, 나날이 무는 이자는 계속 늘어갔다.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갈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내 ‘몸’으로 일을 하는데 번 돈은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고 느꼈고, 이 세계를 벗어나야 착취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업소 주인들과 연결된 ‘조직’ 사람들이 무서웠지만, 어느 날 기회를 틈 타, 무조건 몸만 도망 나왔다. 그리고 주민 등록도 없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어 혼자 은둔하는 생활을 3년이나 했다. 당장이라도 누군가 쫓아올까 두려워 월세 방, 여관을 전전하며 숨어 살았다.

 

당시에는 공권력이나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상담센터에서 법률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오랜 은둔 도망자 생활 끝에 겨우 한 상담센터를 소개 받았고, 그 센터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다. 그것이 약 10년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경찰을 믿지 못했어요. 업소와 연결이 되어 있는 걸 많이 봤거든요. 그러니 업소에서 도망 나와 쫓기는 동안 경찰에 신고한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냥 무조건 숨어 지내면서 잠깐씩 최저생계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만 했지요. 당장 누군가가 붙잡아서 다시 팔아 버릴 것 같고, 단속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바로 멈추는 것 같고, 정말 힘들었어요.

물론 업소 주인들은 여성들이 도망가면 당장 쫓아와 잡지는 않는다는 말도 들었어요. ‘언젠가는 주민등록증을 만들겠지, 언젠가는 결혼을 하겠지.......’ 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린대요. 그러다가 자기네가 필요할 때 잡아들인다는 거예요. 잡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당장 잡기도 한다고 하고. 아무튼 저는 잔뜩 겁을 먹고 죽은 듯이 숨어서 살았어요.

언젠가는 ‘성매매와의 전쟁’을 하겠다는 여자 경찰서장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기에 ‘저 사람은 나를 보호해주겠다’ 싶어서 그 경찰서에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전화 받는 직원이 굉장히 사무적인 거예요. 나는 당장 죽을 것처럼 무서운데 내 사정은 모르고 그냥 업무 처리하듯이 통화를 하더라고요. 지금이라면 다 이해하지만, 그때만 해도 세상을 전혀 믿지 못하고 있을 때라서, 결국 다시 숨었죠.”

 

세상에는 믿을 만한 사람도 있다는 것, 순수하게 나를 돕는 사람도 있다는 것, 내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오랜 고통의 시간 뒤에야 알게 되었다.

바로 지금 그녀가 일하는 곳이, 그녀에게 새 인생을 살라고 손 내밀어 준 상담센터였다. 그러니 그녀가 일터를 먼저 소개하고자 했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바느질을 배우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몇 년 뒤, 자기가 교사가 되어 후배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결혼도 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편과 힘을 합쳐 건강한 가정을 꾸려가며 새롭게 인생을 살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었고,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그녀는 무사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 오는 후배들 보면, ‘미래를 생각해라, 계획을 짜라, 지난 번 그 일은 잘 진행되고 있니?’, 하는 식으로 자꾸 잔소리를 하게 돼요. 후배들의 어려운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해주고 무조건 말을 다 들어주고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저는 자꾸만 채찍질을 하게 돼요.

사실 후배들에게는 이 상담단체 쉼터 생활이 편할 거예요. 여기서는 따뜻하게 배려를 받거든요. 그렇지만 사회에 나가면 그렇지 않잖아요. 당장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고요.

그러니 여기서 자격증 하나라도 제대로 따놓고, 자기 앞 날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훈련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자마자 다시 부적응 상태가 됩니다. 지금 제도로는 3년 정도 여기서 보호받으며 훈련 받을 수 있는데, 그게 긴 것 같아도, 짧아요. 우리들이 세상에 적응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녀는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업소 같은 곳에 갇혀있다시피 살면서 그곳에서 제공하는 모든 것을 그냥 받기만 하며 살다보니(물론 그건 그냥이 아니라 엄청난 고리의 이자로 선불한 것이지만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하다못해 대중교통 이용하는 법이나, 길 찾는 법, 시장에서 물건 사는 일조차 서툴러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배우지 못해, 때와 장소, 사람에 맞게 인사하고 대화하는 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각자가 극복해야할 심리적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아주 작은 일들도 일일이 배우고 느껴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자활 훈련기간 동안 부지런히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여성들은 의지력이 부족하고 세상에 대해 겁을 먹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활훈련이 끝나고 나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틈이 생기면 다시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후배들의 어려움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자꾸 간섭하고 채찍질 하게 되는 것은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 같은 ‘당사자 활동가’(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이 반성매매활동을 하는 경우)의 심정이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든든한 선배였다. 이 여성들의 깊은 사정을 다 알고 있고, 개인이 감당해야할 과제를 철저하게 챙기면서 동시에 성매매문제를 구조적으로 볼 수 있는, 직접 겪으며 몸으로 깨달은 선배인 것이다.

그녀가 대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몸으로 느낀 필요’ 때문이었다.

 

“제가 중 고등학교 다니면서 공부할 일이 없었잖아요. 저는 체육특기생이었으니까 매일 운동만 했거든요. 원래 공부에 취미도 없고, 한 적도 없었어요. 그러니 대학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어요.

여기 센터에 처음 취직했을 때도 고졸이었어요. 원래 대학졸업 이상만 취직 할 수 있는데, 저는 ‘당사자’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채용이 된 거거든요. 여기 상담하러 오는 분들하고 같은 처지였던 사람이니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로.

그런데 여기서 일하다 보니,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뭘 알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아주 절실하게 들었어요. 후배들 상담해 주다 보니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앞을 멀리 내다보고 싶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고 싶고, 저는 복지라는 단어도 제대로 모르고 살던 사람이라, 사회복지가 무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싶고.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데도 또 한편으로는 손가락질하고 빼앗아 가는 사회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어요. 알아야 한다, 배워야 한다는 마음이 그렇게 절실할 수가 없는 거 에요.

그래서 일단 무조건 질렀어요. 대학 입학 원서를 낸 거예요. 사회복지학을 전공으로. 그런데 등록금을 보니, 아무리 사이버대학이라 해도 제가 감당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포기를 했어요. 입학은 했는데, 실제로 마음속으로는 졸업은 포기를 한 거예요.”

 

그러다가 봄빛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정말 기뻤다고 했다. 그토록 원했던 대학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아마 그녀에게 이 돈은 평생에 가장 ‘큰 돈’이었지 싶다. 더구나 열심히 공부를 계속하는 한 장학금이 중도에 끊길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니, 오로지 공부에 전념하며 상담센터 일에 열정을 쏟을 수 있어서 그녀에게는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일이었다.

 

“여성 재단은, 일일이 묻지 않아요. 그게 좋아요. 물론 후원하는 분들의 입장을 잘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어요. 그런데 ‘사진을 첨부해라’ 이런 요구를 하는 곳도 있거든요. 우리 사정을 잘 모르시는 거지요. 그런데 여성 재단은 자세히 캐묻지 않아요.”

 

그녀의 말은, 자격심사와 사후관리를 엄격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을 존중해준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여성 재단이 고맙다고 했다.

그렇겠다. 도움 받는 사람의 인격, 후원 받는 사람의 자존감, 그런 것을 존중한다는 것이, 때로는 후원금의 액수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후배들에게 역할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후배를 위해 자리를 터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심하기도 하고, 센터 사업의 새 영역 개척을 계획하기도 하고, 효과적인 잔소리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고.......

한 마디로 그녀의 고민은 싱싱하고 건강했다. 그것은, 자기의 인생을 완전히 자기 손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가지는 심플하고도 싱싱한 고민이었다.

 

“세상이 정말 달라졌어요. 요즘 어린 친구들 상담 왔을 때 들어보면, 돈이 계기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부모와의 갈등, 외로움, 좋은 브랜드에 대한 욕심, 이런 것들이 많아요. 특히 외로움이 큰 이유예요.

그리고 요새는 유혹당하기가 너무 쉬워요. 사회 환경이 그래요. 길가에 전단지도 많고요, 아르바이트라고 광고 내는 것들 중에 이상한 것도 많고요. 그러니까 애들이 많이 노출이 되는 겁니다. 앞으로 더 많아 질 거 같아요. 알바라는 형식으로 파트타임처럼 도우미 하는 것도 늘어날 거고.

결국 이 일이 여기저기 다 갈취당하다가 끝나는 일이라는 것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알아야 하는데, 막상 어린 애들은 모르니까 이런 단체를 찾지 않고, 시간이 지나서야 이런 곳에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그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아세요?”

 

진희 씨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1주일에 한 번씩 현장(유흥가)에 나간다고 했다. 성매매여성들에게 안내문도 돌리고, 기초적인 법률 지식도 알려주고, 상담센터의 전화번호도 가르쳐주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고 했다. 그것이 그녀가 세상의 이중성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들을, 이 생활에 빠져들도록 유혹해 놓고는 뒤에서는 손가락질하는 이중성이 싫다고 했다. 아무리 쉬지 않고 이 일을 해도 결국에는 ‘다 갈취당하는 구조’를 이 어린 애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비록 그 애들은 아직 알고 싶어 하지 않지만 말이다.

 

당사자활동가 김진희 씨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 공부였다. 세상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사는 방법을 가르친 것도 공부였다. 공부가 왜 그토록 필요했었는지를 오늘처럼 절실하게 들은 날이 얼마나 있었던가. 봄빛 장학금은 그녀의 절실함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고마움을 세상을 향해 갚고 있었다.

 

재봉틀 돌아가는 ‘드르륵’ 소리가 평화롭게 들렸다. 머리를 맞대어 바느질에 골몰하는 모습도 평화로웠다. 오늘 이들이 누리는 이 평화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한 사람이 고통 중에 홀로 극복해내던 눈물의 시간, 그 사람에게 손 내밀고 기꺼이 도와준 사람들의 따뜻한 시간, 인격을 존중하는 돈으로 후원해준 사람들의 속 깊은 시간, 그런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진정한 평화의 시간 아닌가 말이다.

 

 

 

 

정영훈 (작가)

 

Posted by 한국여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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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장학생 김수영 씨(가명. 27세)를 만났다. 봄빛장학금은 성매매로 생활하던 여성들에게 대학교 학비를 지원하여 그 생활을 벗어나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장학금으로 한국여성재단이 지원하고 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장학금이 있지만 탈성매매 여성을 위한 장학금은 거의 없다. 소녀 가장, 돌봐줄 어른이 없는 청소년 등은 누구나 아무런 의심 없이, 도울 수 있는 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탈성매매 여성에 이르면 모두들 생각이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런 일을 해야 했는가? 방종하거나 유혹에 약하거나 윤리의식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 여성들을 대학에 가도록 지원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식의 생각들을 잠깐씩 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선입견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조금 복잡한 마음을 안은 채 거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하고 지극히 평범한 태도로 다가오는 그녀를 보는 순간, 단번에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그냥 내 동생이나 내 친구인 것이다. 그녀들이 했던 일들은 그냥 많은 불행한 사연들, 인생에서 우리 자신도 저질렀던 좋지 않은 선택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거기에 무슨 대단한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 것이다.

 

그녀, 김수영은 14세 때부터 청소년 쉼터에서 생활했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지만, 도저히 ‘그 집에서 함께 살 수는 없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족관계의 문제가 더 컸다. 쉼터는 20여명 정도가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학교 교육과정도 함께 진행하는 곳이어서 오후 4시까지는 검정고시나 여러 자격증을 위해 꼼짝없이 앉아서 공부해야 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더구나 부모가 있음에도 쉼터에서 살아야 하는 사정을 가진 소녀에게는 마음 붙이기 힘든 곳이었다. 당시에 그녀는 쉼터 생활을 답답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재정상의 이유로 쉼터가 폐쇄된 후, 다른 성인 공동체 생활을 모색하는 대신, 그냥 혼자 살기로 결정한 데는 아마도 청소년기에 경험한 ‘답답함’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어쨌든 그 쉼터에서 자그마치 5년이나 살았고, 선생님들께 소소하게 반항하는 것으로 답답한 마음을 풀곤 했던 ‘소녀’ 김수영은 쉼터 폐쇄와 동시에 19살 먹은 ‘성인’ 김수영이 되어 당장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생활비는커녕 당장 잘 곳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고 그저 열심히 일하면 생활이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무모한 자신감만 있었다. 당장 일자리가 문제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그 나이 때의 젊은이들이 흔히 하듯 인터넷 접속을 통해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해 뭘 알고 있지 못했어요. 얼마나 위험한지, 유혹이 많은지 몰랐어요. 쉼터에서만 생활하다가 나왔으니. 제대로 된 성교육도 없었고. 그냥 PC방에 가서 채팅을 했어요. 일자리를 구하는 내용으로요. 그랬더니 아가씨를 구한대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땐 정확히 몰랐어요. 당장 머물 곳도 없다고 대답하니까 그냥 택시타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택시비를 자기네가 내준다고. 대구에서 통영까지 택시를 타고 갔어요. 그 택시비가 첫 번째 빚이 된 거죠. 그 당시에는 세상 물정을 몰랐어요.

 

그렇게 첫 발을 디딘 후, ‘죽도록 기억하기 싫은’ 생활을 3년이나 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앳된 젊은이로서는, 도저히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무섭기만 했다. 빚을 갚아야 할 것 같았고, 경찰도 업소와 한편인 것 같이 느껴졌다. 도망가면 곧 다시 잡혀 섬으로 팔려갈 것도 같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도록 끊임없이 협박했다.


가끔, 그 많은 일 중에 왜 하필 그 일을 택했느냐? 네가 좋아 선택한 것이 아니었느냐? 편하게 돈 벌려던 것 아니었느냐? 등의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 질문이 슬프고 억울하고 때로는 아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도 묻는다고 한다. 공장이나 식당 같은 건전한(?) 곳이 아닌, 그곳을 택한 이유를. 그리고 사슬로 묶어 놓은 것도 아닌데, 그곳에 묶여 있었던 이유를.

무슨 명쾌한 이유가 있었겠는가? 그저 잘 곳도 마땅한 보호자도 없는 19살 먹은 여자에게는 그것이 가장 가까이 있는 일이었을 뿐.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우리 사회가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권하고 있는 일일뿐.


다만, 왜 바로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에, 그녀는 짧지만 분명하게 설명했다. 일단 그 안에 발을 들여 놓으면 다른 방식으로 사는 방법을 알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계속 빚을 지게 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쪽 세상의 시스템 속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빨려 들어가면서 나중에는 밖의 세상이 두려워진다고 했다. 이를테면 욕을 섞지 않고는 말이 되지 않는 곳에서 살다보면, 세상 밖의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꺼려질 정도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일반적인 세상’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듣는 나로서는, 과연 그럴까, 실감나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다른 여성에게서도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던 터라, 그 입장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그것대로의 사정이 있겠지, 짐작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출구가 보이지 않던 그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한 3년간 그곳에서 살았는데,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 일을 잘 기억을 못해요. 얼마 전에 어떤 외국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는데, 정말 다 잊어서 제대로 말도 못했어요. 너무 괴로워서 제가 살기 위해 잊은 거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함께 일하던 나이 든 언니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 나가야겠다고 결심을 굳게 했어요. 그렇게 비참하고 추하게 나이 드는 게 제 미래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해서.

 

탈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믿을 만한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여기저기 여인숙으로 도망 다니며 숨어 살았고, 업주들이 잡으러 올까봐 한동안은 멀리서 ‘다마스 차’만 보면 기겁해서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마침내, 그녀가 한때는 답답하게만 생각했던 쉼터로 연락이 닿았다. 그녀가 자란 곳은 아니었지만, 쉼터의 선생님들이 자신의 보호자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 후, 성인 쉼터에서 살면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기 위해 직업훈련학교를 다녔다. 거기서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길지 않았고, 아이는 지금 친할머니가 키우고 있다.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공부하고 가끔 일도 하며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시험 때가 되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 에요. 밤잠이 없는 아기를 돌보느라 밤을 꼬박 새고 아침에는 시험을 보러 가야 하니까요. 틈틈이 시험공부를 하고, 실습이라도 있을 때면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상태로 며칠을 보내기도 했어요. 아이 아빠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본인도 힘들었겠죠.

 

직업훈련학교 선생님들, 쉼터에서 만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그녀에게 공부를 더 해보라고, 대학에 가라고 권유를 많이 했다고 한다.

 

옛날에도 공부는 잘 했어요. 검정고시 성적도 좋고. 공부하는 게 싫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일반적인 세상’에서 생활비를 벌며 사는 것이 목표였던 그녀에게는 버겁기만 한 권유였다. 그녀는 솔직히 말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회복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은 많았지만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는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돈을 모으고 방을 얻고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그녀로서는 대학교 학비를 마련하는 일이 너무 막막했다는 것이다. 대학에 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마도 꿈이 없어서가 아니라 꿈을 좇는 그 일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꿈만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었는데,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어요. 신선하기도 했고요. 읽은 책이 많지 않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감동을 준 책이에요.

 

선생님들이 자꾸 권하고, 저도 뭔가 확실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나도 대학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저는 인복이 있나 봐요. 제가 무언가 하겠다고 결심하면 도와주는 분들이 꼭 생겨요.

저한테 봄빛장학금도 그런 것이에요. 제 형편으로는 사이버대학교 학비도 큰 부담이 돼요. 일반 대학보다는 싸지만, 그래도 큰돈이잖아요. 장학금을 받지 않았더라면 대학 공부는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학기 당 80만원 가까운 장학금을 받는데, 그것으로 학비를 충당하고, 모자라는 것과 생활비와 용돈은 일해서 벌고 있어요. 제 수입만 가지고는 공부를 할 수 없으니, 이 장학금이 없었으면 공부를 중단했겠지요.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결심하니 장학금이 주어진 기분을 이해하실 수 있어요? 정말 기뻤습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온 거잖아요.

 

어렵게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학비 마련을 위해 이리 저리 알아보던 중, 봄빛장학금을 알게 되고 장학생에 선정이 된 것이 그녀 인생의 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했다. 현재 그녀는 모 사이버대학 4학년으로 사회복지학과 상담심리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쉼터 선생님들이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듯, 자신도 후배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사회복지학을 택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상담심리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겪었던 일, 자신이 당했던 고통,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들, 이런 것들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겠다. 자신의 과거를 재해석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만들어 갈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대학 공부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 위한 길인 동시에, 자신의 인생 자체를 다시 해석하고 자신을 새롭게 찾아가는 길인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자신의 지난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아무래도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들려주는 조언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에 그녀의 인터넷 상담은 많은 청소년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복수전공을 계속 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남들과 똑같은 기회를 가지고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이미 이룬 그녀를 보았다. 상처받은 자만이 상처받은 자를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뛰어난 상담자가 될 것이다. 이미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으로 하나의 전범이 되고 있으니, 언젠가가 아니라 이미,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 자신이 받은 것을 세상에 갚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수영 씨는 봄빛장학금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공부를 마칠 때까지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점이 가장 좋다고 했다. 중간에 장학금이 끊기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하는 자신 같은 사람에게는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다만 국가 장학금을 함께 받는 경우, 학비 부족분만 봄빛에서 지급하기 때문에 실제 지급액이 턱없이 적어지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탈성매매 여성의 경우, 저소득 계층이 많아 국가장학금을 받는 경우가 많으니, 이 부분은 적절한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다고 소개해 주었다.

 

수영 씨는 서른이 되는 내년, 대학을 졸업하는 내년에는 한없이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했다. 공부를 하던, 일을 하던, 사람을 만나던, 그냥 놀던,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좀처럼 하기 힘든 말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 같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들과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 자체가 ‘성공’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것 같았다는 말이다.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게 될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남들과 같은 기회를 얻어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면서, 남들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그녀가 어두운 터널 속에서 그토록 원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는 것 말이다. 봄빛 장학금은 그녀에게 그 시간을 주었다.

 

 

 

 

정영훈 (작가)

 

 

 

 


Posted by 한국여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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